동물들의 공간, 동물원
2009년 8월의 어느 날 우연히 사진 책을 보다가 미국의 사진작가 게리 위노그랜드(1928~1984)의 사진집 『The Animals』 를 알게 된 후에 동물원 연작을 시작했습니다. 고대부터 희귀한 동물을 가두고 볼 수 있도록 권력자들이 만든 개인 정원 인 ‘미네저리’(Menagerie)에서 출발한 동물원이 근대식으로 변한 건 독일의 동물상인 칼 하겐베크(1844~1913)가 1907년 독일 함부르크에 만든 하겐베크 동물원입니다. 이 동물원은 창살을 없애고 실제 자연의 서식지와 비슷한 환경으로 동물들을 전시했습니다. 하겐베크 동물원으로부터 2년 뒤인 1909년 일제가 창경궁에 한국의 동물원을 만들었습니다.
동물원 연작을 시작한 2009년은 한국에서 동물원이 탄생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동물원 작업을 한 지 10년이 되는 2018년이 되어서야 동물원에서 살다가 죽거나 사라지는 동물들의 존재를 인지했습니다. 1년간의 숙고 기간을 거친 뒤에 2020년부터 장노출 기법으로 동물들의 사라짐이나 살았던 흔적을 기록했습니다.
동물원에서 죽는 동물들은 보통 소각 처리가 됩니다. 불로 태워져 재만 남겨집니다. 아주 일부의 동물만이 박제 처리가 되어 죽어서도 계속 전시됩니다. 사진은 보통 빛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영어로 사진을 뜻하는 포토그래피(photography)라는 어원 자체도 ‘빛으로 그린 그림’이라는 뜻입니다. 불태워지며 사라지는 동물들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2022년부터 적외선을 이용해 빛이 아닌 온도를 측정하고 기록하는 열화상 카메라로 작업했습니다. 장노출 방식에서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게 열화상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이를 통해 생명이 있는 존재만 남기고 나머지 무생물은 사라지게 했습니다.
서울시민대학 동남권캠퍼스 시민갤러리의 다양한 전시 공간을 통해, 그동안 작업했던 동물원 작업을 다채롭게 펼쳐놓았습니다. 동물들의 집이자 삶의 터전인 동물원이 어떤 의미를 가질지는 결국 보는 이들의 몫으로 두고 싶습니다.
- 박창환(비두리) 시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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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두리(박창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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